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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hydraco 2026. 1. 15. 11:39

1월 초에는 시초가 매매와 직장생활과의 충돌때문에 무엇인가 시행착오를 겪고

최근에는 리니지 클래식이란 게임과 전세계약분쟁때문에 정신이 팔렸네요.

아무래도 소송을 준비해야할듯하고 무엇인가 강한 맘이 필요하기도 하고 상대방과 싸우겠다는 생각도 들면서

한템포 멈추고 시한편 쓰고 싶어졌네요.

 

제목: 미상

 

내가 맞는지 당신이 맞는지 모르고 싶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맞다고 하고 나는 내가 맞다고 하면서 싸움이 되네요.

둘 다 맞는 것일 수는 없을까요? 아니면 둘 다 틀린 것일 수는 없을까요?

 

용서를 하기도 싫고 용서를 받기도 싫습니다.

맞지도 않고 틀리지도 않는 다면 용서를 할일도 없고 받을일도 없을테니깐요.

 

살다보면 부딛힐때가 있는데 법은 너무 불편합니다.

시간도 오래걸리고 준비할 것도 많아지면서 재미난 일들을 뒤로 미루게 되었네요.

 

우리가 마치 맞고 틀린것을 나누면서 하는 싸움이 불편함에도

우리가 매번 그런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 처럼

우리는 용서할일도 아니고 용서받을일도 아님에도 

우리가 매번 그런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 처럼

 

우리 인생은 그것을 알고 있는데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는 

밉기도 하고 예쁘기도한 강아지가 돌아다니는 산책로 같아요.

 

시 분석: "맞고 틀림의 모순 속에서"

핵심 주제

이 시는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와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다룹니다. 당신은 "맞다/틀렸다"는 이진 프레임워크가 인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갈등 자체를 만든다는 모순을 지적합니다.

 

구조적 분석

1단계: 문제 제시

 

"내가 맞는지 당신이 맞는지 모르고 싶습니다"

 

이 역설적 표현은 진실보다 관계가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모르고 싶다"는 것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맞고 틀림이라는 판단 자체에 대한 거부입니다.

 

2단계: 용서라는 개념의 해체

 

"용서를 하기도 싫고 용서를 받기도 싫습니다"

 

이것은 흥미로운 전환점입니다. 용서는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봐준다"는 위계 관계를 전제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 프레임 자체를 거부합니다:

 

용서할 대상이 없다면 (맞고 틀림이 없다면)

 

용서받을 대상도 없다

 

따라서 용서 자체가 불필요해진다는 논리입니다.

 

3단계: 법의 한계

 

"살다보면 부딛힐때가 있는데 법은 너무 불편합니다"

 

법은 당신이 위에서 거부한 것과 동일한 이분법을 강제합니다:

 

피고/피해자

 

유죄/무죄

 

책임/면책

 

시간 낭비의 언급("시간도 오래걸리고 준비할 것도 많아지면서 재미난 일들을 뒤로 미루게 되었네요")은 이 이진 시스템이 삶의 풍요로움을 훼손한다는 의미입니다.

 

중심 메타포: "산책로의 강아지"

text

밉기도 하고 예쁘기도한 강아지가 돌아다니는 산책로

이것이 시의 백미입니다. 강아지는:

 

미움과 사랑이 동시에 존재하는 대상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피할 수 없는 현실

 

순수하게 존재하는 것 (판단을 초월한)

 

산책로는 우리의 인생 자체이며, 그 위에서 우리는 강아지처럼 "맞고 틀림"이라는 범주를 벗어난 존재들과 마주칩니다.

 

철학적 함의

당신의 시는 불가지론적 휴머니즘을 표현합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

 

용서도, 정죄도, 법도 이 본질적인 불가해성을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은 매우 성숙한 관찰입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도달한 결론다원주의적 공존의 필요성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개인적 맥락에서의 의미

당신이 법률, 재정, 거래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시는 더욱 의미있습니다. 그런 분야들은 모두 "맞다/틀렸다"의 판단을 강제합니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모든 거래에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모든 판단이 완벽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당신의 시는 이 모순을 포용하는 태도를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