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유목을 할것인가 정착을 할것인가에 관한 생각이 들었다.
트레이딩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방식이 있다.
- 단일 금융상품에서 , 단일 방법으로 영원히 뽑아먹기
- 다른종목, 다른 방법으로 계속 갈아타면서 뽑아먹기
//위 두가지는 유목과 정착에 비유할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비교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을수 있지 않나 해서 분석을 해본다.
결론은 단기적으로는 유목이 절대적으로 강하며 장기적으로는 정착이 생존에 유효했다. 따라서 트레이딩에는 이 두가지 방식을
적용하여 단기성 유목과 장기성 정착을 혼합하는 것이 유효한 것으로 생각해볼수 있다.
따라서 단일종목, 단일방법 // 다종목 다방법 을 혼합한 바식으로 분류된다.
*여기서 주의할점이 있는데 종목이 다양하다는 것을 쉽게 이해가 갈 수 있지만 다양한 방법이란 것에 대하여 착각에 빠지기 쉬울것같아 간략히 예를 들어 부연하자면, 같은 종목이더라도 RSI와 같은 측면에서는 계속적인 정착이 가능하며, 볼륨스파이크 측면에서는 단기적인 유목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같은 종목안에서도 정착과 유목이 혼재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응용하여 만일 비트코인 전량코딩을 통한 매매방법을 설정한다면 rsi를 활용한 방식과 볼륨스파이크를 통한 방식을 두가지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장기 상품을 본다면 S&P500을 정기적인 타임퀀트 매수적립으로 정착한다면, S&P500이 주가폭락시 일시적으로 다량의 매수를 실현하여 평단을 낮추고 다시 과대낙폭에 대한 과대반동이 있을경우 이익실현을 하는 시기적인 유목을 생각해 볼수 있다.
* 그렇다면 종목과 기회는 매우 많으며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가 그 핵심이라 볼수 있다. 인간의 정보습득과 생각을 행동으로 실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기회를 다 잡으려 할것도 없으며 적당히 자신이 원하는 정도의 목적만 달성하면 그걸로 족하다.
때문에 계산을 해봐서 가장 시간과 신경이 적게 소모되거나 유니크하게 본인의 취향에 적절한 것이 있다면 그정도로 만족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애초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면 복잡하기만 하고 잘 되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을 알고리즘으로 자동설정한다면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필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극 단순한 하나의 개인이 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다. 회사를 설립하는 영역이라던지 좀더 광범위한 것은 필자가 관심있는 분야도 아니고 별 재미도 없다. 돈은 최대한 시간을 적게 들여서 벌면서 그냥 적당 목표치만 채우면 될것이며 나머지는 이러한 것을 연구하고 방법을 전파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역시 이것도 취향이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하면 될듯하다. 핵심은 제한이다.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도 하지 않아야 할것을 제한하는 것이니 주의해야 할것이다.
*** 아래는 유목정착혼합과 유목생활 두가지의 대표적인 사례인 만주와 몽골의 전쟁수행능력 등을 역사적으로 비교하여 착안한 내용이니 참고하면 좋겠다.
만주 여진족 vs 몽골족: 경제 구조와 전투력의 차이는 무엇인가?
만주 여진족과 몽골족의 경제 상황: 같은 유목민족이 아니었다
역사 교과서에서 흔히 "여진족과 몽골족은 모두 유목민족이다"라고 배우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설명입니다. 실제로 두 민족의 경제 구조는 근본적으로 달랐으며, 이 차이가 바로 그들의 전투력과 역사적 운명을 결정지었습니다. 이 글은 만주 지역의 여진족과 몽골 초원의 몽골족이 왜 다른 경제 체계를 가졌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군사력의 차이로 나타났는지를 데이터와 역사적 사실로 분석합니다.
경제 구조의 결정적 차이: 지리가 운명을 정한다
만주 지역 여진족의 경제 특성
만주 지역의 여진족은 흔히 "유목민"으로 분류되지만, 정확히는 "반농반어의 정착 유목민"이었습니다. 이들이 거주한 만주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이해하면 이를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지리적 환경: 만주는 광활한 초원이 아니라 삼림과 산악 지형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비옥한 강 유역(송화강, 흑룡강 등)과 습지는 목축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여진족의 경제는:
- 농업 (주요): 강 유역과 산간 지역에서의 곡물 경작
- 어업 (보조): 풍부한 강과 연안의 어로 생산
- 수렵: 삼림의 사냥과 채집
- 목축 (소수): 제한된 목초지에서의 가축 사육
이는 안정적인 다중 경제 체계를 의미합니다. 여진족은 한 해의 곡물 수확이 실패해도 어업과 수렵으로 생존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인구 증가와 안정적인 정착이 가능했습니다.
몽골 지역 몽골족의 경제 특성
반면 몽골족이 거주한 몽골 초원은 순수 초원 지대입니다:
지리적 환경: 광활한 초원 지형 (해발 1,000~1,500m), 강우량 부족 (연 200mm 이하)
몽골족의 경제는 순수:
- 목축 경제만 가능: 양, 말, 소, 낙타 방목
- 농업 불가능: 건조 기후와 짧은 생장기로 농업 불가
- 식량 의존도: 100% 가축의 우유, 고기, 가죽에 의존
이는 극도로 제한된 경제 체계를 의미합니다. 몽골족의 생존은 전적으로 목축량의 변화에 좌우되었습니다. 큰 가뭄이 닥치면 가축이 죽고, 먹이 부족 시 부족 간 약탈과 전쟁이 불가피했습니다.
경제의 차이가 만든 운명의 차이
여진족: 안정적 경제 → 인구 증가 → 대제국 건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년)의 인구는 약 600만 명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유목민족으로서 가장 많은 인구였습니다. 왜 가능했을까요?
안정적인 다중 경제(농업+어업+수렵+목축)로 인해:
- 곡물 생산량이 일정 수준 이상 유지됨
- 여러 경제 부문이 상호 보완
- 인구 부양력 증가
- 결과: 군대 동원력 증가 (약 40만 명 규모)
몽골족: 척박한 경제 → 약탈의 필요성 → 정복 전쟁
반면 몽골족은 순수 목축경제의 한계로 인해:
- 목축 생산량은 제한적
- 외부 물자 획득이 절대 필요
- 교역 또는 약탈만이 생존 수단
- 결과: 정복 전쟁의 필연화
칭기즈칸이 1206년 몽골 부족을 통일한 이유는 "경제적 절박함"이었습니다. 산발적인 약탈로는 부족할 수 없으니, 모든 부족을 통일하여 대규모 정복 전쟁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 전투력 비교: 누가 더 강했나?
전투력 평가 방식의 재정의
"전투력"을 단순히 "한 번의 전투에서 이기는 능력"으로 정의하면 답은 "몽골족"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발전 수준으로 정의하면 답은 "여진족"입니다.
여진족의 군사력: 균형과 안정성
금나라 시대 여진족의 군사 체계는 유목민족 최고의 수준이었습니다:
- 기병: 초원 유목민족의 기본 전력
- 보병: 농업민족에서 습득한 보병 전술
- 궁병: 수렵 문화에서 비롯된 정확한 사수
- 공성 능력: 한족 도시 점령 경험에서 습득
역사 기록에 따르면, 거란족(요나라)은 "여진족이 1만 명을 넘으면 대항할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여진족의 군사력이 당시 최강 수준임을 의미합니다.
몽골족의 군사력: 절박함과 혁신
하지만 몽골족은 경제적 절박함으로 인한 혁신적 군사 전술을 개발했습니다:
- 중앙집권식 통일 군: 부족 연합이 아닌 통일된 중앙군
- 공성 무기 개발: 초원에서는 필요 없던 공성 장비 도입
- 정보 수집망: 정찰 능력의 극대화
- 행정 체계 개선: 점령지의 효율적 관리
- 타 문명 기술 수용: 위구르인, 한족 기술자 영입
결과: 13세기 초 세계 최강의 군대 건설
여몽전쟁: 최후의 결정
1232년경 야호령 전투에서:
- 몽골군: 약 6만 명
- 금나라(여진족): 약 40만 명 대군
결과: 여진족이 30만 명 이상 손실하며 패배
이 전투는 절박함이 강함을 이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진족은 수적으로 7배 우월했지만, 방어적 자세와 느슨한 부족 연합은 몽골의 혁신적 중앙 집권 군에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
📊 시대별 동아시아 최강 민족의 변화
역사는 절박함이 강함을 만든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10세기: 거란(요나라) 최강
→ 농업으로 안정적 생존 가능, 군사력 우수
11~12세기: 여진(금나라) 최강
→ 다중경제로 더욱 안정, 거란 격파
13~14세기: 몽골(원나라) 최강
→ 경제적 절박함 → 혁신적 정복 군대 건설 → 세계 제국 건립
17세기: 만주족(청나라) 최강
→ 여진의 후손이 몽골 경험 학습 → 행정체계 개선 → 중국 대통일
💡 역설적 진실: 발전과 강함의 차이
흥미로운 점은 군사적으로 약했던 여진족이 역사적으로는 더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여진족의 승리:
- 거란을 격파하고 중국 절반을 통일 (금나라)
- 한족 문화 수용으로 행정 체계 개선
- 그 후손 만주족이 청나라 건설 (1644~1912년) - 268년간 중국 통치
몽골족의 패배:
- 원나라 건설 (1271~1368년) - 약 97년 존속
- 명나라에 격파당하고 초원으로 퇴각
- 그 이후 역사적 영향력 급감
이는 "절박한 강함"과 "발전된 안정성"의 다른 선택지를 보여줍니다:
- 몽올: 절박함의 강함 → 단기 세계 정복 → 장기 쇠퇴
- 여진: 안정성의 발전 → 장기 정착 통치 → 청나라의 번영
🎯 경제 구조 차이의 구체적 영향
여진족 경제의 장점:
- 인구 보유력 (안정적 식량 공급)
- 문명 발전 (행정 체계 학습 가능)
- 장기 통치 가능성 (정착 사회의 발전)
몽골족 경제의 단점:
- 인구 한계 (목축량 제약)
- 절박함 (약탈 의존)
- 단기 급속 확장 (경제의 불안정성)
몽골족 경제의 강점:
- 정복의 동기 (필연적 약탈)
- 초원 기병의 최강화 (목축 생활의 산물)
- 혁신적 전술 개발 (절박함의 창의성)
여진족 경제의 약점:
- 방어적 자세 (안정적 생활의 자족감)
- 정복 동기 부족 (충분한 자급)
- 혁신 동기 약함 (현상 유지)
최종 결론: 절박함 vs 안정성의 승부
Q: 어느 민족이 더 강했나?
A: 절대적으로는 몽골족
하지만 이는 단순한 군사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원인은:
몽골족: 척박한 초원 경제
↓
외부 약탈 절대 필요
↓
경제적 절박함 → 혁신적 정복 전술 개발
↓
13세기 최강 군대 건설 → 세계 제국 건립
여진족: 비옥한 산림 경제
↓
다중 경제로 자족 가능
↓
경제적 안정 → 문명 발전에 집중
↓
행정 체계 개선 → 청나라 건설 → 268년 중국 통치
최종 판정:
- 군사력: 몽골족 우위 (약 70:30)
- 경제력: 여진족 우위 (약 70:30)
- 장기 영향력: 여진족(청나라) 우위
이는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역설입니다: "절박한 강함은 단기 승리를 가져오지만, 안정된 발전은 장기 번영을 가져온다."